홍콩 살이

DSC_1384_HDR내 가 처음 홍콩 땅을 밟은 것은 이십 대  중반쯤 여름… 홍콩을 하루 경유하는 태국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였다. 태국 여행 중에 장염이 걸려 고생하다가 홍콩 여행 중엔 무더운 여름 땡볕 아래 하루 종일  정신없는 일정으로 관광 버스에 실려 끌려다니며 고생을 하고 난 후, 더위와 습도 그리고 높은 아파트들 외에는 홍콩에 대한 기억 조차 남지 않은 그런 여행이었다.

몇 년 후, 남편의 홍콩행 결정. 이번엔 여행이 아닌 이주였다.  설렘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는 시큰둥한 그런 해외 이사. 그리고 이제 홍콩에서 살고 있는지도 벌써 9년. 아직도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나름 홍콩이란 도시 안에 살고 있음을 은근히 즐기고 산다. 그렇게 나를 끌어당긴 홍콩의 매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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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홍콩을  표현할 때, 쇼핑의 천국, 음식의 천국, 백만 불 야경 등등의 표현을 쓴다. 과연 그것들이 홍콩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이었을까? 홍콩의 매력은 강한 콘트라스트 그리고 그것들의 공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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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성격의 동양 속에 튼튼하게 뿌리내린 서양.

 영 국 식민지라는 역사적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계 최대 국제 무역과 금융 도시라는 이름표는 지구촌의 외국인들을 끌어들였고, 각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웃하고 살며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녹여내는 곳이 홍콩이다. 가끔 한국의 외국 음식 맛집 글을 보면 ‘외국의 00에 와 있는 분위기’라는 표현을 보면서 혼자 미소를 짓는다. 홍콩에서는 어떤 외국 요릿집을 가서 앉아 그 이국적인 데코와 음식 맛에 감탄을 하면서도 ‘이게 바로  홍콩’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문화를 볶고 지지고 홍콩이라는 접시에 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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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속도로 현대화를 수용했지만 구석 구석 배어나오고 지키려 하는 전통.

수 박 겉 핥기 식으로 홍콩을 본다면 참으로 모던한 도시가 아닐 수 없다. 번쩍거리는 높은 건물들로 마천루를 이루며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100점 만점을 줄만한 지하철과 페리 시스템, 세계가 드나드는 허브 공항 첵랍콕… 하지만 그 안에 스물스물 거리며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잡아당기는 마력이 그들의 전통이다. 핼로윈에는 란콰이 퐁에서 마귀 할멈 분장을 하고 와인을 마시며 서양 음악에 댄스를 즐기고 크리스 마스에는 쇼핑몰마다 트리 장식에 캐럴이 흐르지만, 신년에는 사찰을 찾아 대나무 통을 흔들며 신년 운세를 점치고 청명에는 조상을 찾아 종이 돈을 태우고 단오에는 쫑지를 먹으며 용선제를 치르며 중추절엔 비싼 월병을 선물하고 아침이면 곳곳에서 타이치로 건강을 돌본다. 얼마 전 뉴스에서 홍콩의 가장 오래된 전당포 건물이 해체 위기에 놓였느니 건물을 지켜야 한다느니 하는 기사와 홍콩 섬의 교통 한 부분인 트램을 제거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사가 뜨면서 이들을 보존하여야 한다는 홍콩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전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도시와 함께 역사를 이루어내는 모든 향수를 담은 것들을 그들은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킨 것들이 나의 감성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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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모순이 있다.

이 말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하지만 홍콩의 모순은 나에게 매력을 안긴다. 서민들이 싸게 끼니를 해결하는 길가 식당 단타이펑에서 몇 발짝 옮기면 미슐랭 스타로 이름을 날리는 레스토랑이 있고, 최첨단 교통 시설 옆에 털거덕 거리는 트램이 있고, 마카오 까지 단숨에 달리는 쾌속정 옆으로 돛을 단 정크선이 물을 가르며, 럭셔리 고층 아파트 사이에 손바닥 만한 방에 삼대가 모여사는 허름한 건물들이 있고, 고급 브랜드 점들 옆에 길거리 짝퉁 가판대가 있으며, 페라리가 포효하며 달리는 가파른 길을 수레를 끄는 노인이 지난다.

시장에서 작은 포목점을 하시던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한쪽은 친근함으로 다가오고 한쪽은 이상으로 다가오며 나를 울렸다 웃겼다 하면서 잡아당긴다.

오늘도 나는 시내 대형 마트에서 값 비싼 치즈와 햄을 사와 요리를 하지만 일요일이면 동네 어귀 좌판을 벌이는 건어물을 파는 할머니에게로 달려가고 재래 시장을 뒤지며 콩나물을 찾는다.

이곳을 뜨는 어느 날 까지 나는 이 음과 양이 어우러진 홍콩을 여유롭게 헤엄치며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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